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샤 알람 2세 (문단 편집) == 생애 == 샤 알람 2세는 1728년 6월 25일에 아지즈 웃딘 왕자, 후일의 [[알람기르 2세]]가 되는 인물의 아들로 태어난다. 태어날 당시 그의 이름은 알리 고하르 왕자였다. 당시 아지즈 웃딘 왕자가 쿠데타로 쫓겨나 폐위된 [[자한다르 샤]] 황제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한다르 샤의 손자뻘 되는 알리 고하르 왕자 역시 [[델리]] [[붉은 요새]]에 반쯤 감금당하다시피 살았다. 다만 권력다툼에서 패배한 대다수의 무굴 황족들이 완전히 바깥과 차단된 채로 아무 것도 못하고 폐인처럼 살았던 것과는 달리 고하르 왕자는 나름대로 바깥세계와 연락을 취하거나 요직을 맡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감각을 키웠다고 한다. 이후 무굴 제국이 혼란스럽게 붕괴되면서 [[마라타 동맹]]을 등에 업고 실권을 거머쥔 이마드 울물크 재상에 의하여 [[알람기르 2세]]가 즉위하자 알리 고하르 왕자 역시 아버지 아래에서 중역을 맡는다. 특히 모조리 퇴폐적인 퇴물로 전락한 나머지 황자들에 비하면 고하르 왕자가 굉장히 양호한 수준이었던 덕에 그는 [[왕세자]] 자리까지 올라갔다. 이마드 울물크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왕조]]와 이마드 울물크, [[마라타 동맹]]과의 알력 다툼 끝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 알리 고하르 왕자는 1759년 델리의 황궁에서 달아나 동쪽으로 도망쳤다. 알리 고하르 왕자는 왕세자라는 자리를 이용해 [[오디샤]], [[비하르]], [[벵골]] 등지에서 군사를 모아 다시 델리를 재수복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가 도망친 직후 정계의 권력다툼에서 잠시 밀려났던 로힐랴족 출신의 나집 웃디울라 장군이 대군을 끌어모아 다시 델리로 진군했다. 그는 이마드 울물크가 알람기르 2세를 쫓아내고 바지사장으로 세워놓은 [[샤 자한 3세]]를 쫓아내고자 했다. [[두라니 왕조]]의 아흐마드 샤 두라니의 도움을 받아 [[파니파트 전투|제3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마라타 동맹과 이마드 울물크를 무굴 일대에서 몰아낸 후, 나집 웃디울라와 두라니는 알리 고하르 왕자를 샤 알람 2세라는 이름으로 새 무굴 황제로 즉위시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